나의 이야기

(서울시용산구)음찔이.......

뚱자엄마 2016. 1. 17. 21:25

조회 1397     14.06.02 21:41

 

음찔이

 

새벽녘, 갓난아기의 애타는 울음소리에 설핏 잠을 깼다. 엄마를 찾는 것일까, 배고파 보채는 것일까. 온 신경이 그 소리에 쏠렸다. 알고 보니 그게 아기 울음이 아니라 암고양이가 님 그리워 부르는 소리였다니.

다시 며칠인가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어둡고 힁한 아파트 광장을 맴돌았다. 암고양이가 또 그러는가 싶어 진저리가 쳐졌다. 그런데 어제부터 그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새끼 밴 고양이였어요. 새끼는 나야 하고, 갈 데는 없고, 아마 그래서 그토록 울었나 봐요. 저기 담장 밑에 상자를 놓고 그 안에 종이를 깔아주었더니 거기에 들어가 조용하네요.” 아저씨가 가르쳐 준 곳을 살펴보았지만 고양이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찬바람만 쌩하니 불어왔다.

이튿날, 꽉 찬 쓰레기봉투를 버리려고 나갔다. 경비초소 담장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상자 안을 유심히 살피며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가 보았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어요. 저것 봐요. 까만 바탕에 흰줄이 어쩜 귀엽기도 해라새끼를 낳느라 힘이 빠져 지쳤는지 어미고양이는 휴식을 취하는 듯 누워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경계하는 눈빛만은 매서움을 띠고 있었다.

10센티쯤 될까,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앙증맞은 새끼고양이 세 마리가 어미젖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그 모습이 신기한 듯 엄마 따라 나온 아이들도 목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덩달아 신이 났다.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제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자며 떼를 썼다.

엄마, 으응...저기 고양이 한 마리 가져다 키우자

엄마는 아이를 이해시키려 온갖 설명을 해주는데도 아이는 막무가내로 칭얼댔다. 참다못한 새댁이 그이어 아이 손목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도 춥다며 하나 둘 그 자리를 떴다. 어미젖을 열심히 물고 핥고 머리를 들이미는 어린고양이의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오해했던 마음도 덜어낼 겸 어미고양이에게 뭔가 먹이고 싶어 집으로 들어왔다. 마침 먹다 남은 고깃국이 있기에 밥을 좀 말아 가지고 내려와 막 허리를 굽히는 순간 경비아저씨가 소리치며 뛰어왔다.

먹을 거 주시게요. 지금은 어미가 무척 예민해 있을 겁니다. 본능적으로 공격을 할 수도 있으니 직접 주지 말고 가까운 곳에 그냥 놓아주세요. 사람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라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겁니다.”

따뜻한 집에서 사랑받고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버림을 받게 되면 동물이라고 어찌 마음의 상처가 없을까. 간음한 여인 헤스터에게 평생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달게 하고 세상 밖으로 쫓아내려 했던 것처럼 우리 손으로 버려놓고 도둑고양이라는 억울한 이름까지 붙여 부르고 있으니 말 못하는 미물이지만 그 억울함이 오죽할까.

요즘은 어딜 가나 고양이가 많다. 가끔 길 앞을 휙 지나가거나 쓰레기통을 마구 헤집는 모습을 볼 땐 해치려 달려드는 것도 아닌데 흠칫 놀라곤 한다. 고양이는 대체로 깔끔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 종족번식을 위해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것 보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기 위한 본능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나도 고양이와 벗 삼아 놀던 때가 있었다. 고양이를 영물이라 하면서 어머니는 내가 고양이와 노는 것을 내내 못마땅해 하셨다. 개처럼 순종하지는 않지만 저를 예뻐해 주면 잘 따르는 고양이를 왜 경계하라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랫집 무당 할머니 곁에는 언제나 움찔이란 고양이가 붙어다녔다. 술을 좋아해 늘 코끝이 딸기처럼 빨갛던 할머니. 술만 먹으면 아무에게나 욕설을 서슴없이 잘해 동네에서는 욕쟁이 무당할머니로 통했다. 그런 할머니가 그 집 식구들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할 만큼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르기도 했지만 나 역시 자주 할머니 집엘 갔다. 나는 할머니의 말벗이었고 움찔이는 만만한 내 친구였다. ‘움찔이란 이름은 내가 지어주었다. 처음 봤을 때 낯가림인지 어리벙벙했다. 부드러운 줄무늬 털이라도 만져주고 싶어 등을 살짝 쓰다듬을라치면 놀란 듯 몸을 움찔댔다. 그래서 붙여준 이름이다.

처음부터 녀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예리한 눈빛, 날카로운 이빨, 뾰족한 발톱, 생김새부터가 기분 나쁜 게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거기다 마루난간에다 꼭 배설을 하는 통에 수없이 할머니에게 지청구를 듣기도 하고 심할 때는 물고 있던 담뱃대가 회초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발에 치이고 맞으면서도 녀석은 할머니가 뭐가 좋은지 늘 곁에 쭈그려 있기를 좋아했다. 함께 있을 땐 미운 자식 대하듯 하다가도 어쩌다 눈에라도 보이지 않을라치면 할머니 역시 음찔이 어디냐하며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찾아다니시곤 했다.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뜬 것은 이른 봄이었다. 무슨 암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움찔도 몹쓸 병이나 든 것처럼 늘어져 마루 밑에서 꼼짝도 안 했다. 밥을 줘도 나오지 않고 내가 아무리 불러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미동도 안 했다.

할머니도 죽고 없는 세상에 움찔이까지 병이 난 것 같아 겁이 더럭 났다. 나는 움찔이를 생각하며 고구마를 맛있게 구웠다. 뜨거운 군고구마가 식을세라 치마로 꼭 여며 들고 할머니 집으로 내달았다. 분명 마루 밑에 널브러져 있어야 할 움찔이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고 찾고 있는 데 그 집 아저씨가 들어왔다.

움찔이 찾는 거냐. 그 녀석 청승떨고 있는 게 보기 싫어 내다 버렸다.”

나는 그때처럼 아저씨가 미워 본 적이 없다. 며칠인가 움찔이가 찾아온 동리를 헤맸다. 차가운 성에로 뒤덮인 풀숲을 헤치며 몇날며칠 온 들판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그 후 나는 움찔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초목이든 그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

외로움도 덜고, 즐거운 만족감을 얻기 위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고 한다. 사람은 동물로 하여금 필요한 욕구를 충족하고 동물은 그런 주인을 섬기며 즐거움을 준다. 가족의 일환으로 동고동락하는 이로운 공생(共生)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애완동물이 병이 들었다고, 늙었다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장난감처럼 내다 버릴 거라면 애초부터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을 나눈 동물들이야 죽도록 주인을 섬긴 죄밖에 더 있을까.

가깝게 잘해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 손익에 따라 상처를 주고 떠났다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동물이 먼저 키워준 주인을 배반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장화 신은 고양이를 비롯해 검은고양이 네로그리고 (고양이 역)과 제리에서 고양이는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웃음과 꿈을 주고 있는가.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애완동물을 좋아해 기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다해 마지막까지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삶이 단조롭고 건조한 요즘, 그 옛날 어리바리하던 움찔이가 보고 싶어진다.

<시니어리포터 박00님>

 

haesonga
반가와서 들어왔습니다. 건강은 좀 어떠셔요?? 14.06.04 리플달기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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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뚱자엄마
개인적으로 전화,문자,이메일로 안부 물어 주시는 많은 분들 감사 드립니다만,아직은;; 그래도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답니다 haesonga님~ 감사 드립니다~ 14.06.07 삭제 리플달기
맹구야
맞습니다... 가족입니다... 14.06.03 리플달기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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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뚱자엄마
모든 반려인분들께서 이렇게만 생각 하신다면 유기동물들이 엄청나게 줄어 들텐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14.06.07 삭제 리플달기
sure
오랫만 이세요 글잘읽었어요 건강 잘챙기고 계시는거죠 건강하세요..... 14.06.03 리플달기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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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뚱자엄마
감사 드립니다~sure님 아직까지 좀 많이;안 좋지만 좋아지리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14.06.07 삭제 리플달기
태평양
오랜만에 글로 뵙네요 ...잘 지내고 계신지요 연락도 통 못드렸네요. 가슴뭉클한 글 잘읽고 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14.06.03 리플달기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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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뚱자엄마
그러네요 태평양님~ 정말 오랜만 이시네요~ 정말 너무 감사 드리는 분~뵙고 싶네요^^ 14.06.07 삭제 리플달기
잉그마르베르히만
길위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고양이들도 따뜻한 시선속에서 더불어 살아갈수있는 그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14.06.03 리플달기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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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뚱자엄마
멀고도 먼길 이겠지만 생명 이라는게 소중 하다는 단순한 생각 하나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이 들이 많은가 봅니다; 14.06.07 삭제 리플달기
크라잉울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14.06.02 리플달기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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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뚱자엄마
저 도 글 은 올리질 못 하지만 님의 글 보며 많은 힐링을 하고 있습니다~감사 드립니다~ 14.06.07 삭제 리플달기